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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완수

 
처제가 10월에 결혼하게 되었다. 1년10개월만에 새로운 짝을 찾아서 새출발을 하게되었으니 다행일 따름이다. 이로서 나의 역할도 이제 거의 완료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다. 

2011년말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때 마누라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뭘 해야할까 고민하던 기억이 난다. 잠시 고민하다 가정에서 남자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아빠는 어떻고 남편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의 모든 남자가 다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다 버리고 그냥 가 버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을 주변의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니 잘 했던 것 같다. 마음의 짐 하나를 슬쩍 내려놔도 될 듯 싶다.


by 하얀그림자 | 2013/07/30 16:32 | 근황 | 트랙백 | 덧글(4)

새로운 삶?

 
잘 하면 내년쯤 마눌님을 따라 해외에 나갈수 있을듯 싶다. 나가게되면 최소3년은 있어야 하니 제대로 된 변화를 겪을것 같다. 

제일 중요한 어디로 가는지는 미정이다..ㅋ

대충 예상되는 지역은 터키, 알제리, 베트남 정도인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터키를 제일 선호하는데 결과는 나와봐야 알것이다. 인생이라는게 어찌될지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지는 않을듯 싶다. 

by 하얀그림자 | 2013/07/10 09:56 | 雜想 | 트랙백 | 덧글(3)

막차를 잡아탔다는 느낌

 
올해 회사에서 있어야 할 절차&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두번을 하고 나면 기정사실화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칼자루를 자신들이 쥐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친절한 배려라고나 할까? 이쪽의 삽질도 몇번 있었지만, 그걸 가지고 저런 식으로 나서는 쪽이 더 나쁜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는 떠나는 막차의 닫히는 문을 비집고 올라서선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당사자라면 차라리 뭐라도 해보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 놓여있는 내 모습은 엉거주춤 그 자체이다. 비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서기도 애매한 상황은 기분나쁜 침묵의 분위기와 더해져 안개처럼 뿌옇게 주변을 맴돌고 있다. 

by 하얀그림자 | 2013/04/29 13:31 | 雜想 | 트랙백

애 보면서 만5년을 보냈구나

 
2008년 강릉외가에 있던 현서를 데려오면서 나의 애보기 경력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물론 임신, 출산과정에서도 아빠로서 할만큼은 했다고 생각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2008년 오늘이었던것 같다. 돌이켜 보면 참 어떻게 보냈나 싶다. 시간이 가면 다 하는 것이고, 손에 붙으면 능숙해지지만 그래도 꽤나 힘든 순간이 많았다. 아마 누군가에게 떠밀거나, 맡길 수 있었으면 지금처럼은 못했을 것이다. 나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무조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제도 평소처럼 애들을 애봐주시는 분 집에서 찾아서 데려오다 동네 마트에 잠깐 들렸는데 마구 뛰어가는 두 놈들 보니 새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만5년이라는 시간은 세상에 없던 아이가 나와 사람구실을 하게 하고, 기어다니기 바쁘던 놈이 1시간도 넘게 턱을 괴고 앉아 책을 보게 만들었다. 잠 투정이 없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젖먹이 시절부터 꽤 오랫동안 잠투정이 많았고, 그 덕택에 업어가도 모르게 자던 내가 애들 모로 눕는 소리에도 눈을 뜰 정도로 얕은 잠을 자고, 토막잠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난 덕택에 이제 한놈은 등에 업고, 한놈은 안아서 집에오는 묘기를 부릴 필요도 없어졌다.

애들 덕택에 나는 저녁이 있는, 아니 넘치는 삶을 살게된 것 같다(만5년동안 내가 저녁약속을 한 횟수는 아마 20번 안쪽일것이다). 애들 데리고 와서 짐 정리하고 간식챙겨주고 내 밥 해서 먹는 저녁시간이 마냥 편안한 것은 아니지만 술에 쩔지 않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애들 크는 모습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보는 기회를 갖는 아빠는 대한민국에서 매우 드물것이다. 

앞으로도 갈길은 멀지만, 그래도 이제 정말 한 고비는 넘긴것 같다는 느낌에 끄적여본다..


by 하얀그림자 | 2013/02/05 11:09 | 육아 | 트랙백 | 덧글(5)

컵밥 사건을 보며 든 생각

 
노량진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컵밥 노점상 철거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것 같다. 생계형 드립 치지 말라는 내용의 댓글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사회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공공자산을 개인이 점유해서 이익을 내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원래 하려는 이야기는 이런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가끔 노량진을 지나면서 컵밥을 먹으려고 옹기종기 모여서 있는 수험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친구들 공부할 생각이 없구만.."이라는 느낌이든다. 공부라는 것을 해 보면 알겠지만, 왠만한 육체노동보다 더한 칼로리를 소모한다. 거기에 시험과 같은 데드라인이 정해져있는 경우는 스트레스까지 겹쳐서 더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한다. 먹는게 다 뇌로 가는것을 아니지만, 일단 제대로 된 공부를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건 당연한 이야기다. 

재료만 보면 원가 1천원도 안들었을것이 확실한 컵밥을 서서 먹고 있으면 돈도 절약하고, 시간도 절약하니 1석2조라고 스스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영양분 공급도 못해줘, 쉬어야할 타임에 쉬지도 못하니 효율은 0에 수렴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노량진경찰서나 동작구청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서 먹는게 최선이라는 점을 왜들 모르는지..

몇번의 공무원시험감독을 해 본 경험으로 보면, 공무원 시험준비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 뭔가를 하고 있어'라는 자위의 대상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시율이 50%를 넘고, 그나마 시험장에 있는 대부분은 문제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찍고난다음 자버리거나 나오는게 공무원시험의 현실인 점을 생각해보면 저 컵밥이라는 존재는 불안감을 위로해주고, 자신이 무언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환상을 주는 환각제일지도 모른다. 

by 하얀그림자 | 2013/01/25 15:10 | 雜想 | 트랙백 | 덧글(20)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누구 탄신제라는 좀 황당한 제목의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돌아다니는것 같다. 인터넷상의 분위기는 거기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미친x 라고 간주하는게 대부분이지만, 난 그 행사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가진게 없던 시절, 몸뚱아리 하나에 의지해 노력하고 약간의 운이 따르면 상상할 수 없던 일이 스스로에게 벌어지던 시절이 그 시절이었다. 모든게 풍족한 지금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고, 풍족감을 주려면 엄청난 노력이 들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란 존재는 과거를 돌이켜보게 된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열정적이고, 임팩트 있던 순간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앞뒤로 깔려있을 수많은 고통과 좌절, 분노와 아쉬움은 시간이라는 무자비한  학살자에게 밀려 사라진지 오래이다. 현실이 만족스럽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다면 과거는 그냥 지나간 시간일 뿐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 뭔가 이루고 성취했던 기억들은 소중할 따름이다. 그 소중한 순간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비아냥거리는 자들은 자신의 모든것을 무시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 시대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가진 세대들을 보면서 왜 지금은 저들에게 아름다운 현실을 선사하지 못했을까 고민해야지 이해할 수 없는 꼴통, 정신나간 x 취급을 한다면 결국은 표로 응징받을 수 밖에 없는게 정치이다. 박 후보는 그들에게 있어 봄빛 찬란했던 인생의 황금시대를 기억나게 해 주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녀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름다운 기억의 동반자라고나 할까?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고, 무시하는 자들은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시절이 누군가에게는 나름대로 아름다운 과거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 시절은 분명 암흑기인데 왜 저러지?"라고 생각하면서 멍청이 꼴통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은 있다. 그 추억을 비아냥 거릴때 분노하는 것은 모두가 똑같다. 

by 하얀그림자 | 2012/11/20 14:41 | 雜想 | 트랙백

국회의원 수...

 
국회의원이라는 존재는 국민들에게 항상 '식충이', 내지 '기생충'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것 같다. 그 숫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고, 특권이라는 것인 존재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을 아닐듯 싶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안철수 후보가 100명 감축, 비례대표 확대라는 언급을 했다. 저 숫자를 보면서 한번 따져보고 싶었다. 


일단 100명을 줄이면 국회의원수는 200명. 현재 지역구 246명에서 100명을 줄이면 146명, 다시 여기에 비례대표를 확대하면 지역구 의원수는 100명까지 내려갈 수 있을듯 싶다. 아마 지역구 100명 + 비례대표 100명을 생각하는듯 싶다. 2012년 총선에서 총 유권자가 4천만명이었으니 40만명당 의원1인이 평균값일 것이다. 선거구당 인구비례는 3배를 넘지못하도록 헌재에서 평결을 내린바 있음을 감안해보면 현실적으로 최소 25만명에서 최대75만명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현재는 10만~30만 수준)

이 경우 대도시야 옆 동네랑 대충 합하면 된다고 치더라도, 중소도시의 경우 거의 도 단위에서 국회의원이 몇명 나오지 않게 된다. 
전남을 예로 들면 25만명을 기준으로 잡을 경우 현재 2개 선거구인 고흥 보성 장흥 강진 영암 5개군을 묶어야한다. 국회의원 본인들의 반발은 둘째치고 지역민들이 과연 수긍할 수 있을까? 인구과소지역이 25만명이라면 대도시권역은 75만명이 상한선이 되는데 유권자 220만명 인천광역시는 3명이 할당된다. 인천시민들이 수긍할까?

그렇다고 국민들이 비례대표에 대해 더 신뢰할까? 오히려 자기들이 결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비례대표 순번이라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간의 협상의 결과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 아닌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숫자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어줄 대표자의 숫자인 것이다. 자신들의 대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선택된 사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게 문제아닐까? 

by 하얀그림자 | 2012/10/24 17:10 | 雜想 | 트랙백

노후

 
결혼 한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나이들면 처가가 있는 강릉에 가서 살겠다고 생각해왔다. 바다가 보이는 번잡한 곳이 아닌 구정이라는 동네의 양지바른 곳에 자그마한 집을 하나 짓고 책이나 보면서 유유자적하면서...

아기자기한 커피집을 같이 해도 좋겠지 싶었는데 문득 구정이라는 동네가 테라로사의 고향이라는 점을 내가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유명한 커피집 근처의 커피집? 아마 스트레스만 팍팍 받을 것 같아 포기!! 생각을 바꿔보니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정말 잘하는 집 근처에서 살면 좋은거지 내가 꼭 그곳이랑 경쟁을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심심할테니 뭔가 아이템이 하나 있어야겠다 싶었는데 아침에 문득 생각이났다. 

"맥주"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자가제조할 수 있으면 나도 즐겁고, 가끔 찾아올 친구나 애들도 좋겠다 싶었다. 예전에 한번 찾아본적 있지만 다시 한번 관련 자료들을 훑어보니 과거보다 훨씬 자료도 많고 잘 정리되어있다. 차근차근 따라해 보면 해볼만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 발효기를 들여다놓고 만드는 것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힘들겠지만 일단 공부부터 해 봐야겠다. 

햇살, 커피, 책, 맥주..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ㅎㅎ

by 하얀그림자 | 2012/09/04 10:04 | 雜想 | 트랙백 | 덧글(2)

마눌생신 아침 풍경

 
그렇다..오늘은 마눌님 생신.

어제 문득 이 사실을 깨닫고 잠시 고민했으나 평소 하던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D-1
퇴근전 편지를 한통 써서 봉투에 담고, 퇴근길에 한우양지 300g을 샀다. 애들 챙겨서 집에 들어간 다음 미역을 불려놓았다. 

D-0
아침 5시반에 일어나 미역을 박박 문댔다. 부드러운 미역국을 좋아하는 마눌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는 열심히 빨아야한다. 미역을 빨아놓고 큰 냄비에(그렇다..미역국과 카레는 언제나 큰 냄비!!) 들기름을 부어놓고 양지를 넣어 달달 볶는다. 고기가 대충 익을 때쯤 미역을 투입하고 한참을 볶는다. 거기에 물을 넣고 소금 3큰술(그래..이제 미역국은 간 볼 필요도 없다)을 넣고 한참 끓이다 약불로 줄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시히카리쌀을 꺼내 살살 씻어 밥솥에 올려놨다. 대충 시계를 보니 6시가 다되어간다. '자 이제 일어나는 마눌께 미역국을 올려야지..'하고 있는데 전기압력밥솥이 갑자기 김을 빼버리더니 꺼져버린다..잠시 혼란스러웠으나 뚜껑을 열고 확인해 보니 볶음밥 용으로나 써야할 상태. 깨끗히 포기하고 밥을 큰 그릇에 퍼놓고 다시 쌀을 씻어 올린다. 

밥솥 탓에 식후 커피부터 먼저 대령. 마눌 씻는 사이에 집안정리와 설겆이 완료. 우여곡절끝에 막 지은 쌀밥 한 공기와 미역국 한그릇으로 생일날 아침상을 차렸다. 편지를 전달하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그렇다..선물은 없다~)을 하고나니 애들 짐을 챙길 시간..

이 와중에 아들놈이 밥 먹겠다고 나서서 밥상을 차리니 딸내미도 자기도 먹겠단다..Orz...결국 애들 둘 밥 챙겨서 다 먹이고 세수시키고 알림장 적고, 옷가방 챙기고, 가방들 챙겨놓고 나도 씻는다. 비오는 날씨탓에 애들 비옷을 챙겨입히고 장화 신겨서 몰고나가 애 봐주시는 분 집까지 데려가는 것으로 다사다난했던 생신 아침 시간은 끝!!


결혼후 6번째 생일이지만 매번 변변한 선물 하나 없이 미역국만 끓여주는 무드없는 남편을 좋아하는 울 마눌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by 하얀그림자 | 2012/08/30 16:34 | 근황 | 트랙백

다시 한번의 변화..

 
마눌이 본부에 곧 복귀할 듯 싶다. 작년 8월쯤 파견생활을 시작했으니 1년도 안되 돌아가는 셈이다. 2년 정도를 예상했는데 빨리 자리가 났다. 몇년씩 떠도는 인공위성들이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눌 표현대로)꿈같은 시간이 이제 끝나간다는게 아쉽기만하다. 

2010년말 복직한 이후 정시퇴근 내지 동반퇴근을 1년반동안 하면서 꼬박꼬박 애들 같이 데리고 오고, 집에와서 밥 해서 저녁을 먹었다. 주말이면 항상 어디론가 놀러 갔고,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이런 생활이 마냥 계속될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것은 사실이다. 낯설고 어렵고 힘들지는 않지만 이제 혼자 애들을 데려오고, 저녁을 차려먹고, 애들을 챙겨서 씻겨 재우는 생활이 곧 시작될 듯 싶다. 또 몇달후면 아침에도 마눌부터 먼저 출근시키고 난 다음 애들을 챙겨서 출근을 해야한다. 뭐 이제 애들도, 나도 다 익숙해졌기 때문에 힘든것은 없지만 애들이 엄마의 온기를 느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질듯 싶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결심한 것 중 하나가 "마눌 외조에 전념하기"였다. 나도 마눌도 서로 자기가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어느순간 상대가 자신의 길에 걸림돌 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내가 한발 늦게, 좀 천천히 내 갈길을 가면 된다 생각했고, 지금까지 거기에 맞춰 잘 살고 있다. 중앙부처의 과장생활이라는 것이 항상 바쁘고, 일에 쫒기고, 불려다니기 바쁜 생활이다. 돌이켜보면 더 바쁜 시기도 애 낳으면서 잘 살았다. 앞으로 닥쳐올 변화도 그렇게 잘 넘어갈 수 있겠지..




by 하얀그림자 | 2012/07/05 11:06 | 근황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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